음악

허클베리핀(Huckleberry finn) 4집 [환상...나의 환멸]

꼼맹곰 2007. 10. 2. 14:30
허클베리핀(Huckleberry finn) 4집 [환상...나의 환멸]
아티스트 : 허클베리핀(Huckleberry finn)
발매일 : 2007-09-07
장르 : Indie Rock

여기, 음악이 빛난다 허클베리핀 4집 [환상...나의 환멸]





사람이 다 그렇다.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다. 초심은 물러지고 타성이 생긴다. 뮤지션도 마찬가지다.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는 뮤지션은 손에 꼽힌다. 대부분 어느 시점을 지나면 앨범에서 한 두 곡 빼고는 들을 게 없는, 범작을 내놓는다. 초기의 결기는 사라지고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으로 생명을 이어나간다. 평범한 인간의 속성이다. 그러나 허클베리핀은 그렇지 않다. 그들의 네번 째 앨범 [환상...나의 환멸]은 또 하나의 초심이다. [18일의 수요일], [나를 닮은 사내], [올랭피오의 별] 이렇게 석 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단 한번도 잃어버린 적 없던, 그들의 초심은 [환상...나의 환멸]에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심지처럼 불꽃을 피워올린다.

상대적으로 직설적인 앨범 타이틀이 말해주듯, 이 앨범은 허클베리핀 스스로의 자세를 다져 잡는 작품이기도 하다. 지난 앨범에서 불었던 서정의 바람대신, 로큰롤이 질주한다. 데뷔 앨범 만큼이나 스트레이트하지만 곡의 구성과 편곡, 사운드에 있어서는 그에 비할 수 없이 유연하다. 10년동안의 성장이 그 직선적인 사운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. 첫 곡이자 타이틀 곡인 '밤이 걸어간다'는 현재 영미권 록의 화두인 개러지 록에 대한 허클베리핀의 대답이다. 그들은 이 곡을 통해 이들이 한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, 동시대의 경향에 나름의 소화력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. 새로 보강된 키보디스트 루네의 코러스가 이기용의 보컬과 어우러지는 '내달리는 사람들', 일렉트로닉 비트를 도입, 그들에게 또 하나의 무기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'그들이 온다' 등이 이번 앨범의 주된 색깔을 읽게 하는 곡이다.

[환상...나의 환멸]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지점은 바로 이소영의 보컬이다. [나를 닮은 사내]부터 지금까지 허클베리핀의 목소리를 책임지고 있는 이소영은 지난 앨범과는 비교할 수 없는, 놀라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. 발성과 호흡, 감정표현에 이르기까지 이소영은 이기용이 만든 곡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불러낸다. 분노와 좌절, 허무와 고독, 애수와 희망을 넘나들며 어느 한 곳에서도 허투루지 않은 보컬을 선보이는 이소영은 이번 앨범의 완성도에 있어서 단연 수훈갑을 차지한다. 이제 이기용과 이소영의 투톱 밴드로 완성됐음을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선언한다. 그녀가 한국 여성 록 보컬의 독자적인 지분을 차지하게 됐음을 알리는 인증서이기도 하다.

1996년 결성된 허클베리핀은 10년 넘는 세월동안 이제 겨우 네번 째 앨범을 발매했다. 그만큼 꼼꼼히 자신들의 길을 걸어왔다는 얘기다. 그러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,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, 보다 높은 음악적 이상을 추구해왔기에 그들이 걸어온 한 걸음, 한 걸음은 탄탄한 반석이 될 수 있었다. 앨범을 발표할 때 마다 자신들의 외연을 넓히되, 그들을 그들답게 하는 좋은 음반에 대한 가치는 포기하지 않았다. [환상...나의 환멸]도 그런 발걸음의 연장선상에 있다. 멈춰서서 만족하는 여행의 종착이 아닌, 끝을 알 수 없는 원정의 비문을 그들은 다시 한번 한국 대중음악계에 아로 새겼다. 어느 때 보다 풍요로웠던, 2007년의 대중음악계에서도 단연 주목할 만한 샛노란 빛이 [환상...나의 환멸]에 번쩍인다.

01. 밤이 걸어간다
02. 내달리는 사람들
03. 그들이 온다
04. 죽은 자의 밤
05. 낯선 두 형제
06. 푸른 수평선
07. 알바트로스
08. 휘파람
09. 오나비야
10. 60`s
11. 환상환멸